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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경전 비판에 대한 짧은 견해

by 바이로자나 2023.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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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어떤 대상을 숭배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열반(Nirvana)에 이르고자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수많은 경전이 있는데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천수경, 금강경, 반야심경, 천수경 중에 신묘장구대다라니, 수많은 진언들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많은 비판들이 있는데 공부하는 수행자로서 이에 대한 짧은 저의 생각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 신묘장구대다라니, 천수경, 반야심경을 검색해보면 꽤 자극적은 제목으로 비판과 비난을 하는 글을 보게 됩니다. 합리적인 비판은 참신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극적인 문구로 비난하는 것은 서로에게 좋지 않다고 생각이 됩니다. 우리나라 최대 검색포털에 블로그 글과 지식인 답변에 올라온 글 중에 자극적인 비난을 일삼는 글이 생각나 이에 대한 합리적인 비판을 하고자 합니다.

 

 

○ 신묘장구대다라니에 대한 비판

  - 힌두교의 신들을 찬양한다?

   : 신묘장구대다라니를 보면 니라간타(청경관음)가 자주 등장하십니다. 청경관음(목이 초록색)께서는 중생들이 독을 대신마신 이유로 목이 초록색으로 변하신 분입니다. 힌두교에 등장하는 신인데 신묘장구대다라니에서 이분을 찬탄하였다고 비난을 합니다. 신묘장구대다라니는 철저히 관자재보살(관세음보살)에 대한 찬탄입니다. 나모 라다나 다라야야, 나막 알야 바로기제 새바라야 사바하. 즉 아발로키 테스 바라(관자재보살=관세음보살)께 귀의하고 찬탄하는 내용입니다.  또한 청경관음을 등장시키는 이유는 그분에 희생(Sacrifice)에 대한 예경입니다. 그와 같은 희생정신을 높이 평가한다는 내용입니다. 경에 부처님이 등장하시지 않는다고 신묘장구대다라니가 부처에 대한 모독이라고 비난을 합니다. 그렇게 평가를 한다면 천수경의 주인공은 천수천안관세음보살님이십니다. 그럼 천수경도 모독이라고 해야 하는 것인가요. 아닙니다. 신묘장구대다라니는 철저하게 관세음보살님의 시선에서 다른 신들을 바라보는 것뿐입니다. 멧돼지 형상, 사자 형상, 호랑이 가죽을 두르는 신들에게 사바하(스와하)를 한다고 해서 그 신들을 찬탄한다기보다는 그런 신들에게 조차 자비를 베풀고 관찰한다는 입장으로 이해를 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 싯다유예 새바라야 사바하

  : 이 문구를 해석하면 "위대한 요가수행을 마친 분께 사바하"라는 뜻입니다. 이 문구도 힌두교적 성격이 있다고 말을 하는데요. 유예는 요가입니다. 요가는 고대 인도 수행법 중하나 죠. 의역을 하면 위대한 수행을 마친 분께 예경을 한다는 것입니다. 부처께서는 다른 종교에 대한 비판보다도 성불하신 과정에 대해 나의 가르침이 이러하여 너희에게 말을 해주니 따라 하던 하지 않던 그것은 네가 알아서 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수행을 하건 그것을 통해 열반에 이르면 되는 것입니다. 다른 수행을 예경 한다고 그것이 부처에 대한 모독은 아닌 것이죠.

  - 견해

   : 사실 신묘장구대다라니 자체가 내용이 혼재 된 것은 맞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너무 영적인 느낌으로 변질이 되었습니다. 매일 21독을 하면 일이 잘 풀린다, 좋은 일만 생긴다 이런 식으로 현혹하는 중 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순수한 마음으로 독송을 하는 것이 아니라 혼탁한 마음으로 21독을 하고 또 영험한 무엇인가를 바라는 경향을 배척해야 합니다. 내용 자체도 흐름이 매끄럽지는 못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정말 불교 자체의 가르침이라고 느끼는 부분은 "라아 이사미 나사야, 나베사 이사미 나사야, 모하자라 마사미 나사야"입니다. 부처께서는 탐, 진, 치 삼독을 없애라 하셨습니다. 위 문구는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독을 끊게 해 달라 바라는 것이죠.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울부짖으며 21독을 한다면 나 자신이 맑아지고 그 맑아진 제 자신에 대한 메아리가 분명히 나를 맑게 만들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나모 라다나 다라야야 나막 알야 바로기제 새바라야 사바하!

 

○ 반야심경에 대한 비판

  - '공'의 처음과 끝을 설명하지 못한다.

   : 반야심경은 '공'의 이치를 설명합니다. '공'은 연속해서 일어난다 라는 '연기'의 법칙입니다. 무엇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고 허무도 아니고 실재가 아닌 바로 연기 입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이해를 합니다. 쉽게 말해 우리가 먹는 쌀밥에서 쌀알은 벼에서 수확한 것이고 그 벼는 모내기를 통해 자라난 것입니다. 그 모 역시 볍씨에서 자라난 것이죠. 그러면 다시 그 볍씨는 쌀알 압니다. 이렇게 순환한다는 것은 이해를 했습니다. 그러면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 듭니다. 그 쌀알의 시작은 어디인가?입니다. 청바지를 만드는 직물의 그 시작은 어디이고, 내가 태어난 씨앗의 그 시작은 과연 어디인가?입니다. 이것은 우주세계관과도 문제가 이어지는 것입니다. 아마 불교에서 가장 약한 부분이 이 부분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저조차도 의문이 들었으나 명확하게 답을 듣지는 못했습니다. 한때 저의 화두이기도 했습니다. 모든 것의 시작은 과연 무엇인가?입니다. 그러나 답은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시작을 안다고 하는 것이 내 수행의 어떤 도움이 되느냐를 따지니 아무런 도움도 해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것을 알면 아는 것일 뿐 그 시작은 내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과거일 뿐이고 내 수행은 현재이기 때문입니다. 그 시작을 알면 조금 더 많이 아는 불교수행자일 뿐입니다. 또한 분별입니다. 그 시작을 안다는 것 자체가 분별입니다. 분별은 곧 번뇌를 만들어냅니다. 아직 저의 수행이 덜되어 더 명확한 답을 얻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 견해

  : 반야심경은 600부 반야경의 핵심을 260자로 설한 말씀입니다. 그 자체로 엄청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 또한 처음에는 아무 의무도 모르고 그저 입으로 공염불만 했었는데 뜻을 공부하고 매일 독송하다 보니 점점 제게 다가오게 되는 것 같습니다. 경이라는 것은 그런것 같습니다. 어떤 영험을 바라기보다는 그것을 곱씹고 고민하고 계속 생각하다 보면 어느새 나 자신이 그 경을 닮아가는 것이고 그것이 곧 수행이라 생각됩니다.

 

오늘도 모든 분들 복 많이 지으시고 성불하시기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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