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의 법문집 '한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사람을'에 수록된 다섯번째 법문 '봄날의 행복론-1'입니다. 내용이 길어 두편으로 나눠서 작성합니다. 본 법문은 2006년 4월 16일 봄 정기법회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 봄날의 행복론 · 1
온 천지간에 꽃입니다. 봄 기운이 사방에 넘치고 있습니다. 풀과 나무들이 저마다 가꾸어 온 아름다운 속을 활짝 열어 보이고 있습니다. 이럴 때 마음이 여린 사람들은 '꽃멀미'를 앓습니다. 지난 겨울에 얼마나 추웠습니까? 꽃나무들이 많이 얼어 죽어서, 봄이 와도 꽃을 피우지 못한 나무들이 적지 않습니다. 지금 피어있는 꽃들은 그 모진 추위를 이겨 내고 피어난 꽃들입니다. 꽃을 대할 때 무심히 스쳐 지나가지 말고, 오늘 아침 꽃이 피어 있는 모습을 보면서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이렇게 꽃이 우리 앞에 활짝 문을 열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환경학자들은 미래에 가서는 봄에 꽃을 보지 못할 수 도 있을 것 이라고 합니다. 지금 처럼 지구환경이 훼손되는 상태가 지속되면 봄이 와도 어디에서도 꽃을 볼 수 없는 때가 올 것이라고 합니다.
꽃을 보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두가 좋아합니다. 꽃을 보고 싫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꽃을 보고 좋아하는 것은 우리들 마음에 꽃다운 요소가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무심히 자연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일은 즐겁습니다. 새삼스럽게 삶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살아 있기 때문에 꽃의 아름다움도 누릴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무엇엔가 쫓기는 사람들은 이런 아름다움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꽃을 보고 다 아름다워하는데 무엇엔가 쫓기는 사람들은 꽃이 피는지 지는지, 새잎이 돋아나는지 시드는지 관심 밖입니다. 사람은 무엇에 쫓겨서 살아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자주적인 삶이 아닙니다.
세상일에 휘말려서 우리 둘레에 꽃이 피는 이 가슴 벅찬 사실을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놀라운 신비입니다. 우주가 지니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활짝 열어 보이고 있습니다. '대지는 꽃으로 웃는다.'는 시구도 있습니다. 꽃의 피어남을 통해서 인간사도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지니고 있는 가장 아름답고 맑은 요소를 얼마만큼 꽃피우고 있는가? 얼마만큼 열어 보이고 있는가? 꽃을 통해서 우리 자신의 삶의 모습도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자연이란 무엇입니까? 인간을 포함한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이 의지해서 살아가는 원초적인 터전입니다. 생명의 원천인 자연을 가까이 하지 않으면 인간성이 소멸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감성이 무뎌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탈인간, 박제된 인간이란 말들을 하지 않습니까? 우리 둘레에 어떤 변화가 있다는 것은, 그 변화를 통해서 우리 자신도 변화를 추구하라는 소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현대의 우리는 늘 시간에 쫓겨 살아갑니다. 시간이란 무엇입니까? 사람이 만들어 놓은 선 같은 것입니다. 물리적인 시간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특히 공동생활에는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물리적인 시간과 심리적인 시간은 성질이 다릅니다. 불안과 두려움은 심리적인 시간에 의해서 부추김을 당합니다. 물리적인 시간과는 상관없이 혼자 가만히 있는데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심리적인 시간을 감당하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사람은 심리적인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합니다. 물리적인 시간은 타의적이고 외부적인 것입니다. 심리적인 시간은 자주적입니다. 흔히 '인간성이 소멸되어 간다. 인간의 감성이 사라져 간다.'라고 말하는데 자연과의 교감이 단절되면 우리 자신도 모르게 감성이 녹슬고, 인간성이 메말라 갑니다. 그래서 살아 있는 미라가 됩니다.
이 이야기는 초기 아프리카를 탐험한 유럽인들이 겪은 경험담입니다. 회교 신비주의 수도자들인 수피의 우화에도 실려 있습니다. 한 탐험가가 밀림을 뚫고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었는데, 그는 짐을 운반해 줄 세 사람의 원주민을 고용했습니다. 그들은 사흘동안 충분한 휴식도 취하지 못한 채 서둘러서 밀림을 뚫고 앞으로 계속 나아가기만 합니다. 사흘째 되는 날 짐꾼들은 자리에 주저 앉아서 더 움직이려 하지 않습니다. 잘 가다가 갑자기 짐꾼들이 움직이려고 하지 않자 탐험가는 매우 화를 냅니다. 서양 사람들이 미개인들한테 곧잘 그러듯이 화를 냅니다. 실제로는 미개인이 아니라 문명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원주민입니다.
탐험가는 화를 내면서 예정된 날짜와 시간까지 목적지에 도착해야 하기 때문에 어서 가자고 재촉합니다. 그러나 짐꾼들은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윽박지르기도 하고 달래기도 했지만 그들은 전혀 요지부동입니다. 그래서 탐험가는 그들 중 한사람을 붙들고 잘 가다가 주저 앉아서 가지 않는 이유를 말해보라고 합니다. 그러자 원주민이 대답합니다.
"우리는 이곳까지 제대로 쉬지도 않고 너무 빨리 왔어요. 이제 우리 영혼이 우리를 따라올 시간을 주기 위해서 이곳에서 기다려야만 합니다."
사흘동안 쫓기듯 쉼없이 왔기 때문에 몸과 영혼이 분리된 것입니다. 영혼이 자신들을 따라올 시간을 주기 위해서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탐험가가 이끄는 대로 허둥대며 쫓기듯 길을 헤쳐 오느라 영혼이 따라올 시간을 주지 못했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정신없이 쫓겨 왔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현재의 우리들에게 중요한 가르침을 전하고 있습니다. 속도와 효율성만 내세우다 영혼을 상실한 현대인들의 모습을 그대로 상징하고 있습니다. 시간에 쫓기거나 몹시 서두를 때 도는 재촉을 당할 때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급하게 움직일 때 우리는 안정을 잃고 정서가 불안정해집니다. 다 그런 경험이 있을것입니다. 제한속도 시속 100킬로미터로 달려야 할 구간을 140킬로나 150킬로로 달리면 연료만 많이 소모되는 것이 아니라 정서가 불안정해집니다. 자신도 모르게 흥분해서 들뜨게 되고 피로가 가중됩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사고를 일으키지 않습니까?
속도란 그런 것입니다. 속도와 효율성은 매우 냉혹하고 비인간적입니다. 어떤 직장이든 마감 시간이 있습니다. 이 마감 시간이라는 것은 비인간적입니다. 사람이 기계가 아니고 감성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에 차분히 생각하면서 행동할 시간적인 여유가 필요한데, 계속 쫓기다 보면 엉뚱한 곳으로 뻗어 나갑니다.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표현대로 모든 일에 영혼이 따르지 않으면 불행해집니다. 더 말할 것도 없이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살아갑니다. 불행하기 위해서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가 다 같이 바라는 행복은 온갖 생각을 내려놓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바라볼 시간을 갖는 데서 움이 틉니다. 복잡한 생각, 미운 생각, 고운생각 다 부려 놓고 그저 무심히 자연의 아름다움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그 안에서 행복의 싹이 틉니다. 진정한 행복은 이 다음에 이루어야 할 목표가 아닙니다.
요즘은 섬진강까지 매화를 보러 가는 매화열차가 생겼다고 합니다. 전에는 없던 일인데 좋은 현상입니다. 물론 일이 바쁜 사람들은 한가해서 꽃구경이나 다닌다고 하겠지만, 어딘가에 꽃이 피었다고 일부러 친구와 함께 꽃 구경을 떠난다는 것은 진정 꽃다운 일입니다. 그러나 꽃이 멀리 진해나 쌍계사 골짜기, 하동이나 구례에만 피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가까이에서도 꽃이 피어 있습니다. 꽃을 보러 멀리가는 것도 꽃다운 일이지만, 바로 우리곁에서 피어나는 꽃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 네번째 법문 : 영원한 것 없으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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